중국 오대산(五臺山)은 너무나도 유명한 불교 성지다.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이 시현(示現)하는 장소로 알려져 있다. 산시성 오대현 동북쪽에 위치한다. 오대산이란 이름 그대로 다섯 개의 평평한 봉우리가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 제일 높은 봉우리 북대가 3058m, 가장 낮은 남대도 2474m에 달한다. 지난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절경을 자랑한다.

오대산은 청량산(清涼山)으로도 불렸다. <화엄경>에는 “동북방 청량산에 과거 보살이 머물고 있었는데 현재는 문수보살이 1만여 명의 보살과 함께 살며 항상 설법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오대산을 경전에 나오는 청량산이라고 여겼다. 자연스레 문수보살이 머물고 있으리라 믿었다. 실제로 당나라 시대엔 오대산엔 360여 개 사찰이 있을 정도로 불자들의 정성은 지극했다. 오대산의 8월은 더위가 느껴지지 않고 청량한 기운이 가득했다.

오대산은 한국불교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신라 자장율사가 오대산 중대 보궁 태화지에서 목욕하며 문수보살을 친견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노스님으로 나타난 문수보살은 자장율사에게 “그대 나라 동북쪽 명주땅 오대산에 1만의 문수보살이 늘 머물고 있으니 뵙도록 하라”는 가르침을 전했다. 부처님 사리와 가사 발우도 전수했다. 귀국한 자장율사는 중국 오대산과 산세가 흡사한 강원도 오대산에 월정사를 창건했다. 그렇게 우리나라에 문수신앙이 전해졌고, 꽃피게 된다. 혜초스님도 오대산에서 수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혜초스님은 당나라 유학길에 올라 오대산에서 인도 스님인 금강지의 제자가 되었고 인도를 순례한 후 세계 최초의 여행기 <왕오천축국전>을 펴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스님을 비롯한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8월28일 한국 문수신앙의 뿌리 중국 오대산 불교 성지를 찾았다. 한국불교 발원지와 연관이 있는 이곳에서 그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다. 나아가 한국불교의 미래를 고민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주최한 ‘불교지도자 중국불교 문화교류 사업’의 핵심 일정으로 진행됐다.

순례엔 종단협 회장 진우스님(조계종 총무원장), 차석부회장 도진정사(진각종 통리원장), 부회장 주경스님(조계종 중앙종회의장), 상진스님(태고종 총무원장), 우인정사(총지종 통리원장) 등 종단협 소속 16개 종단 대표들이 함께했다. 이와 함께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도심스님, 사서실장 진경스님, 홍보국장 덕안스님, 종단협 사무처장 탄웅스님, 봉은사 선명상연구소장 일감스님 등도 동참했다.

한국불교 대표단은 현통사 참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했다. 현통사는 중국 오대산 성지의 최초의 사찰이자 중국 전체를 통틀어 최고의 사찰로 평가받는 곳이다. 사실상 오대산에 부처님 가르침이 처음으로 시작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표단은 도량 내 각 전각을 참배하며 뜻을 기렸다. 인근에 있는 탑원사도 들렸다.

탑원사는 본래 현통사의 탑원이었다. 현재는 독립해 5대 불교 참선도량으로 역할을 해내고 있다. 탑원사를 상징하는 건 바로 대백탑이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높이 75.3m, 둘레 83m의 우뚝 솟은 흰 사리탑으로 오대산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꼽힌다. 현재는 보수 작업으로 어수선했지만, 그 위용은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오대산 각 봉우리에 위치한 성지로 발걸음을 향했다. 굽이굽이 비포장도로 흙길을 1시간 넘게 달렸다. 창 밖으로 문수보살을 친견하려 부지런히 오대산을 오르는 순례자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승합차를 타고 가면서도 고생스럽다 여긴 자신을 반성한다. 차가 지나가며 일으킨 흙먼지가 시야를 막아도 순례자들은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어쩌면 순례자의 모습으로 화현한 문수보살이 아닐까. 그 모습만으로도 울림을 준다.

한국불교 대표단은 중대 연교사, 태화지, 북대 영응사를 차례대로 참배했다. 중대 연교사는 문수보살이 설법을 펼친 곳으로 전해진다. 문수보살이 동자의 모습으로 나투는 유동문수(孺童文殊)를 모셨다. 오대산 다섯 봉우리 중 가장 규모가 큰 사찰이기도 하다. 태화지는 잘 알다시피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목욕재계하고 7일간 간절히 기도를 올린 장소다.

이곳에는 문수보살의 발자국과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바위를 모셔놓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문수보살이 목욕을 마친 뒤 디딘 바위에 발자국이 남은 것이라고 한다. 조심스레 문수보살 발자취에 정대하고 손자국에 손을 마주 대보기도 하며 지혜를 발원해본다.

마지막으론 오대산 5개 봉우리 중 가장 높아 ‘화북의 지붕’으로 불리는 북대 영응사를 참배했다. 무구문수(無垢文殊)를 모셨다. 고도가 높은 만큼, 오대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기도 하다. 흔히 오대산의 날씨는 변화무쌍해 가늠하기가 어렵다고 했지만 이날 만큼은 쾌청하다 못해 눈부시게 찬란할 정도다. 영응사에서 한국불교 대표단은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신심을 고취했다.

현대 과학 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했고, 물질적으론 풍요로워졌다. 하지만 각종 갈등과 사회문제는 더욱 극심해졌고 괴로움이라는 인간 근본의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식은 많이 쌓였음에도 지혜가 부족해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총무원장 진우스님이 ‘선명상’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정신적으로 고통받고, 불안에 떠는 사람들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기 위해 선명상의 지혜를 내놓은 것이다. 오는 9월28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국제선명상대회 개막식에서 그 지혜가 대중들에게 공개될 예정이다. 지식은 과거지만, 지혜는 미래다.

“문수보살의 가피가 선명상 지혜로 발현돼 국민과 전 세계인 모두가 평안함을 얻길.”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오대산 성지 곳곳마다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며 발원했다.

중국 산시성=이성진 기자 sj0478@ibulgyo.com